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국 경고’ 정면 돌파… 로빈 콜웰 영입은 ‘방패’이자 ‘핫라인’
기술 생태계의 대부 립부 탄 CEO, ‘공학적 리더십’으로 지정학적 파고 넘을까
[아이씨엔 오승모 기자] 인텔(Intel)이 2025년 12월 16일 발표한 임원 인사는 표면적으로는 통상적인 조직 재정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미·중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선 미국 대표 반도체 기업의 절박한 생존 본능과 최고경영자(CEO) 립부 탄(Lip-Bu Tan)의 치밀한 ‘정치 공학’이 읽힌다.
이번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로빈 콜웰(Robin Colwell)의 영입이다. 그녀는 불과 얼마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부보좌관이자 국가경제위원회(NEC) 부국장으로 재직하며 현 행정부의 경제·기술 정책을 설계했던 핵심 인물이다. 인텔이 그녀를 정부 대외협력(Government Affairs) 부문 총괄 부사장(SVP)으로 앉힌 것은 단순한 로비력 강화를 넘어선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립부 탄 CEO를 향해 던진 날 선 ‘중국 경고’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응답이다.
백악관 직통 채널 가동… 정책 리스크 해소 나선다
잘 알려진 대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치로 반도체 공급망의 완전한 탈중국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립부 탄 CEO의 과거 이력은 백악관의 표적이 되었다. 벤처캐피털(VC) 월든 인터내셔널(Walden International)의 회장으로서 그가 구축했던 광범위한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 그중에서도 중국 기술 기업들과의 연결 고리는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견제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보조금 지급 보류는 물론 CEO 교체 압박설까지 흘러나온 바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립부 탄이 선택한 수는 ‘정면 돌파’다. 백악관 내부 사정에 정통하고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콜웰을 영입함으로써, 행정부와의 오해를 풀고 신뢰를 회복할 ‘직통 핫라인’을 구축한 것이다. 이는 정치적 리스크를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단순히 정치적 방어 기제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립부 탄의 진정한 리더십은 ‘정치’가 아닌 ‘기술’과 ‘생태계’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과거 케이던스(Cadence Design Systems)를 파산 위기에서 구해내고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분야의 최강자로 키워낸 립부 탄은 철저한 ‘엔지니어링 중심’의 경영자다. 그는 재무적 수치보다 기술적 완결성을 중시하며, 반도체 산업이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거대한 ‘생태계(Ecosystem)’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정치적 외풍 차단하고 ‘본질적 기술’에 집중
립부 탄 CEO가 이번 인사에서 푸시카르 라나데(Pushkar Ranade)를 임시 CTO로 임명하고 양자 컴퓨팅과 차세대 소재 기술을 통합 관리하는 ‘CTO 오피스’를 신설한 것은 그의 장기 전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치적 외풍은 콜웰이라는 방패로 막아내고, 자신은 본질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인텔이 잃어버렸던 ‘기술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만이 파운드리 사업의 성공과 인텔의 부활을 담보한다고 믿는다.
또한 AI 마케팅 전문가인 애니 셰이 웨케서(Annie Shea Weckesser)를 영입한 것 역시 기술적 성취를 시장의 언어로 번역해 낼 줄 아는 소통 능력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텔이 단순히 ‘칩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미래 컴퓨팅 플랫폼을 정의하는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메시지다.
립부 탄의 리더십은 지금 시험대에 올랐다. 그는 한 손에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라는 ‘정치적 과제’를, 다른 한 손에는 파운드리 경쟁력 확보와 기술 초격차라는 ‘공학적 과제’를 쥐고 있다.
로빈 콜웰의 영입은 립부 탄이 정치적 파고를 넘기 위해 띄운 승부수다. 이 수가 적중한다면, 인텔은 다시금 기술 본연의 가치에 집중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게 될 것이다. 반도체 거인 인텔이 ‘정치’라는 변수를 ‘전략’으로 치환해내고, 다시금 기술의 제국을 재건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